지난 4일 새 대통령이 취임했다. 8년 만에 다시 보는 ‘탄핵 대선’이었다. 지난해 벌어진 비상계엄의 여파를 극복하고 새로운 시대가 열리길 바랐다. 그런데 대선 과정을 돌아볼 때 선택자인 유권자 입장에서 마냥 유쾌하지만은 않았다. 80%에 육박하는 투표율마저 무색했다.
유권자는 단순히 후보 중 한 명을 고르는 선택자를 넘어서,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실질적 주체다. 유권자는 출마자의 이미지나 흥행 요소에 휘둘리기보다 각 후보가 제시하는 정책과 비전, 국정 철학을 꼼꼼히 따져야 한다. 하지만 이번 선거는 그럴 기회조차 주어지지 못했다. 여전히 진영 논리에 갇혔기 때문이다. 정책토론은 실종됐고, 혐오와 조롱의 언어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아젠다의 부재다. 한국 사회가 당면한 청년 주거, 불평등 해소 같은 중요한 의제들은 제대로 논의되지 못했다. 후보자들은 선거 공약집을 늦게 내거나 아예 내지 않는 등의 행보를 이어갔다. 더욱이 대선 토론도 가관이었다. 혐오 발언이 난무하는 후보자들의 모습에 보는 내가 부끄러웠다. 이번 선거는 후보자 개인의 과거 행적이나 가족 문제가 아젠다를 대체했다. 시대가 요구하는 방향성에 대한 공론은 부재했고, 유권자는 선택의 기준을 잃었다.
민주주의도 실종됐다. 국민의힘은 계엄 선포로 민주주의를 한순간에 무너뜨린 전임 대통령 윤석열과 선거 끝까지 절연하지 못했다. 선거 기간 내내 김문수 후보보다 더욱 이슈를 몰고 간 주체는 윤석열과 그의 주변 인물들이었다. 정당한 경선 과정을 거쳐 올라온 자당 후보를 하룻밤 사이 외부인으로 교체하려고도 했다. 과연 민주주의를 수호할 생각이 있었는지 의문이었다.
민주주의와 정치적 의제가 실종된 이번 대통령 선거는 결국 반쪽짜리 선거가 돼버렸다. 유권자에게 더 나은 비전과 실질적인 정책으로 다가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정당은 상대를 깎아내리기에 급급하거나 정치의 목적을 국민이 아닌 다른 데 두어선 안 된다. 그래야 비로소 유권자 또한 감정이 아닌 합리적 이성으로 정치를 바라볼 수 있게 된다. 다음에는 ‘누가 더 못할지’가 아닌 ‘누가 더 잘할지’를 고심하고 한 표를 행사하는 유권자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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