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창간 70주년-나는 학생기자다⑦] “다신 안 한다” 마음이지만 오늘도 기사를 마감하고 있습니다, 편집실을 지키는 사람들, 2025년 현역기자의 기록과 고백
전 편집장은 한 학기 만에 강제 졸업, 두 명의 팀장은 한 명은 입대, 한 명은 고시 준비로 종적을 감췄다. 이쯤 되면 “설마 OB 선배가 돌아와 맡아주시겠지”라는 희망 섞인 예감도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덜컥 편집장이 된 건 뉴스팀장 72기 하시언(미디어학 2023)이었다.
하시언은 “처음 편집장이 됐을 때 데스크는 없고 기자도 총 9명이었다”며 “나보다 나이 많은 기자에게 어떻게 업무를 지시해야 할지, 마감을 안 지키거나 이상한 짓을 하면 뭐라고 혼내야 할지, 아이템에 대한 기준은 어떻게 잡아야 할지 모든 기준을 혼자 정해야 하는 것이 큰 부담이었다”고 학기 초의 혼란을 떠올렸다. 그럼에도 그가 아직 도망치지 않고 자리를 지키는 이유는 단 하나, 각자 1인분씩은 꼭 하는 정기자들 때문이다.
▲ 서울캠퍼스 기자단, 조판을 앞두고 회의 중이다. (사진=이지수 기자)
누구에게나 있는 수습시절
성장하는 기자들
모든 기자의 시작은 같았다. 혼나고, 헤매고, 울기도 하는 수습 시절. 73기 원희재(원자력공학 2021) 역시 마찬가지였다. ‘적응이 느렸다’던 원희재는 수습 시절 당시 편집장이었던 72기 조병연(프랑스어학 2018)에게 질문지를 검토받다 “중학생 수준”이라는 혹평을 받았고, 그날 밤 기자들이 공유하는 단체 채팅방에는 “행정실에 중학생 수준의 질문은 하지 마라”는 전체 공지가 올라갔다.
기자들과 떠난 첫 세미나에서 “모두가 나를 중학생 수준으로 기억할 것 같았다”던 원희재는 “오히려 많이 혼나고 기죽었던 경험을 초석 삼아 기사 쓰기와 취재 방향을 잡고 있다”고 지금 자신의 모습을 설명했다.
입사 전에는 올 A+로 정경대 차석을 거머쥘 정도로 노력파였던 김규연(무역학 2020). 대학주보에 들어와서는 “혹시 수업 너무 빠져서 F 맞는 거 아냐”는 걱정을 들을 만큼, 주보에 올인하는 ‘무지막지’ 열정이었다. 기자칼럼인 세시봉 집필 기회를 동기 중 한 명이 먼저 얻게 되자, 김규연도 열심히 하고픈 마음에 “나도 오피니언 쓰고 싶다”고 편집장에게 말하다 눈물이 조금 흘렀다. 우는 김규연을 두고 편집장과 동기 기자들은 배를 잡고 웃어댔고, 이 장면은 순식간에 “규연이 꺼이꺼이 울었다”는 전설로 포장되어 회자되고 있다. 수습 시절, 동기에게서 받은 자극은 성장을 이끄는 원동력이 되기도, 기자로서의 내면이 자라나던 작은 전환점을 가져다주기도 했다.
대학주보는 기본적으로 ‘취재팀 중심’ 체제다. 그 구조 안에서 “어떻게든 팀에 끼어보자”는 마음으로 두 학기를 버틴 미디어팀 73기 박서연(시각디자인학 2023)은, 지금은 유일한 데스크 인원으로 편집장 하시언을 든든히 보조하고 있다. “왕복 3시간 걸려 편집실에 출근한다”는 휴학생 박서연이 대학주보의 중심에 스며든 건, 단 한 번의 우연한 호출 덕분이었다.
조판 작업이 한창이던 어느 날 밤 8시, 전 기획팀장 72기 김륜희(정치외교학2023)가 국제캠 교내 자동 제세동기 배치 여부를 “지금, 당장” 알아봐야 한다며 전화를 걸어왔다. 그날, 유일한 취재팀 동기는 연락두절이었고 결국 미디어팀 소속이던 박서연이 캠퍼스를 누비며 직접 자동 제세동기를 찾아 나섰다. 그날 이후 박서연이 취재팀과의 경계선을 조금씩 허물며, 자신의 역할을 넓혀가기 시작했다.
▲ 국제캠퍼스 기자단, 학생회관 113호 편집실에서 매주 월요일 아이템 회의를 진행한다. (사진=이지수 기자)
마감 압박과 발제 지옥에도
중도이탈자 없어
기자들이 가장 고달픈 것은 다름 아닌 마감 압박이다. 정해진 기한 안에 팩트를 담은 기사를 완성해야 한다는 부담감은, 기자들을 쉴 틈 없이 몰아붙였다. 73기 추찬호(철학 2021)는 이 사이에서 가장 깊은 고민을 안고 있었다. 세미나에서 제기된 ‘현장 취재 중심’의 대학주보 기조를 따르자니, 반복되는 행정실의 “담당 선생님이 자리에 없으셔서 메일로 연락해 주세요” 답변에 어느새 다시 서면 위주의 인터뷰를 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시간은 많이 소요됐고, “14일이 주어지는 조판 기간 동안 13일을 기다린 경험도 있다”고 털어놨다. 추찬호는 현장 취재의 어려움을 토로하며 “모쪼록 빠름과 정확함 사이에서 균형을 찾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대학의 학사일정은 해마다 비슷하게 반복된다. 이는 곧, 기사 소재 역시 반복된다는 뜻이다. 매주 월요일 열리는 아이템 회의가 돌아올 때면, 발제에 어려움을 겪는 기자들이 하나둘씩 나타난다. 발제 능력을 키우고 싶어 하는 이환희(미디어학 2021) 역시 아이템에 대한 욕심과 책임 사이에서 매번 고비를 넘기고 있다. 기자들의 모든 활동은 늘 학업과 함께다. 쉽게 말해, 개인 시간은 환상이다. 유일의 공대 기자인 원희재는 최근 들어 “기말시험은 어디 가고 기사만 쓴다”는 푸념을 늘어 놓는다.
대학주보 기자의 시간표에는 ‘공강’이라는 단어가 존재하지 않는다. MBTI가 J 유형이라는 73기 김유경(정치외교학 2024)도 마찬가지다. 계획을 세우고 또 세워도, 2주 단위 마감 앞에서는 매번 무너지고 만다. 정해진 일상 안에 변수가 너무 많은데, 그 변수가 전부 대학주보다.
출발은 불안했지만, 중도 이탈자 없이 한 학기를 보내고 있다. 놀라운 일이다. 하시언은 “아무리 편집장이어도 나이 어린 동생이 이거 해라, 저거 해라, 이건 왜 이렇게 했냐 지적하면 기분 나쁠 만도 한데 다들 받아들인다”며 “정기자 수가 없어 그만큼 기사를 2~3개씩 쓰는 게 당연시된 웃픈 상황인데도 불평 불만 없이 묵묵히 해낸다는 점에서 고맙다”고 말했다.
한 학기를 마무리하며
각자의 갈림길 앞에서
기자가 되겠다고 들어왔지만, 돌아서며 다짐하는 건 ‘다신 안 한다’는 마음. 대학주보에선 익숙한 이야기다. 이들 역시 갈림길 앞에서 각자의 방향을 골랐다. 권도연(중국어학 2024)은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내 기사를 읽고, 또 영향을 받는다는 걸 알게 됐다”며 기자의 꿈을 키우고 있다. 추찬호는 “매번 마감에 치이고 소재에 쪼들리다 보니 이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에 핀테크 관련업으로 희망 진로를 바꿨고, 다음 학기에 파이썬을 배우러 떠날 예정이다. 하지만 “치열하게 버텨온 1년 반의 시간이 절대 헛된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는 말을 남겼다. 진로는 정하지 않았지만 “이 경험은 어디서든 쓸모 있다”고 말하는 김유경과 “사람 만나고 글 쓰는 건 기본 소양이기에 무조건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이환희도 있다.
호기심을 행동으로 옮기는 용기, 마감에 쫓기면서도 결국 발행일을 지켜낸 책임감, 때로는 버겁고 때로는 외로운 순간들을 견디며 스스로 일의 주인이 되었던 경험. 대학주보라는 작지만 치열한 편집실은 누군가에게는 꿈을 시험해 보는 무대였고, 또 누군가에게는 다른 길을 향한 디딤돌이었다. 진로가 무엇이든, 기자를 계속하든 하지 않든, 이곳에서 보낸 시간은 결국 모두를 ‘조금 더 단단한 사람’으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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